Chapter 54
나는천천히눈을떴다.
띵한머리를부여잡고몸을일으켜서주위를살폈다.
“…여기가어디지?”
차가운검은벽돌로이루어진좁은방.
나는스스로가어디에있는건지도통알수없었다.
‘애초에….내가여기에어떻게왔더라?’
—-
몇시간전나는반지를조정받기위해금릉으로향했다.
릴리스에게한거짓말은시간을많이주지못할것이다.
친구에게물건을받아오는데몇시간씩걸리지는않을테니까.
가능한한빨리다녀와야했다.
금릉에도착하자곧장문을두드렸다.
그러자저번에봤던직원이문을열어주었다.
직원은나를보더니환한미소를지었다.
“아하!또뵙습니다,고객님.사이즈를알아오신건가요?”
“네,정확하지는않지만…”
“걱정마세요반지사이즈는아주세밀하게알필요는없으니까요.”
다시직원의안내에따라계단을내려갔다.
“혹시….사이즈조정에는얼마나걸릴까요?”
막한달이라고해버리면좀문제인데….
“대략30분이면끝납니다.”
“그렇게빨리요?”
“저희측금속마법사가상당한실력자거든요.어떻게,기다리다가시겠습니까?아니면다시오시겠습니까?”
30분이라면야….
“기다리겠습니다.”
“좋습니다.그럼일단방으로안내해드리죠.”
직원은저번과똑같은방으로나를안내했다.
잠시기다리라는말과함께자리를비웠던직원이다시돌아왔을때는다른사람을대동하고있었다.
기다란로브를입고모자를꾹눌러쓴그,혹은그녀는도저히정체를알아볼수없게끔온몸을가리고있었다.
“이쪽이반지의조정을맡아줄금속마법사입니다.”
마법사가고개를숙여인사했다.
“개인정보보호를위해정체를감출것이니부디불편해하지않으셨으면좋겠습니다.우선사이즈를알아볼까요?”
직원은품에서줄자를꺼냈다.
“반지는어디에끼실건가요?”
“왼손약지입니다.”
직원의눈이부드럽게휘었다.
“우후훟,죄송합니다.제가쓸데없는걸물어봤군요.”
아니,딱히그런건아닙니다만…
왼손을받아든남자는줄자로약지의두께와길이를재었다.
“상대분의사이즈는어떻게되시죠?대략고객님의몇분의몇이다라고만하셔도됩니다.”
“두께는제것에4분의3정도,길이는반마디더깁니다.”
“오,상당히가녀리신분이군요.알겠습니다.조정을진행하는모습을보고싶으시다면여기서조정을하겠습니다.”
금속마법이라…기초원소의발전형인그마법은볼기회가얼마없-
‘…아,루이스가금속마법사였지?’
어쨌거나나름희귀한축에속하는구경거리였기때문에나는보고싶다고말했다.
“그럼여기서진행하겠습니다.”
직원이신호를주자마법사가로브를팔뚝까지걷어올렸다.
붕대가감싸진팔이나타났고마법사는반지케이스를조심스레열었다.
마법의빛이번쩍이고,반지들이허공으로천천히떠올랐다.
다시봐도영롱한붉은보석반지에괜스레가슴이두근거렸다.
이윽고조정이시작되었다.
마법의힘으로반지의링부분이천천히움직였다.
링에새겨진문양이일그러지지않는섬세한마법컨트롤에감탄한나는멍하니그장면을관람했다.
그렇게빠르게조정이끝나고크기가달라진반지가다시케이스에놓여졌다.
마법사는고개를푹숙이더니방에서나갔고직원은케이스를들어내게건넸다.
“수표의잔액은어떻게처리해드릴까요?”
직원이알려준수표의잔액은그다지큰액수는아니었다.
그렇다고현금으로가져가기에는또부담스런수준이었다.
“절반은은화로주시고절반은….팁으로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고객님!”
성실한서비스정신을가진직원에게감사함을표한나는빠르게준비된은화와반지케이스를챙기고금릉을나섰다.
“조심해서들어가십시오.부디성공하시길.”
직원의배웅을받으며돌아가는발걸음은저번과마찬가지로가벼웠다.
다만머릿속만큼은여러생각이복잡하게교차하고있었다.
‘언제건네줘야하지?’
‘가자마자바로?아냐,너무분위기없잖아.’
‘내일?그것도좀….’
‘아!이제새해가얼마남지않았지?그럼새해딱되자마자건네는거야.’
‘좋아,그렇게하면되겠네.’
‘…멘트.다시생각해봐야겠지..?’
‘뭐라고말하면서줘야한담….’
이런저런고민을하며기숙사로향하던나는갑자기시야가흔들리는것을느꼈다.
‘…어라?’
땅이진동하고하늘이마치호수에비친하늘처럼이리저리흔들렸다.
속이울렁거리고몸에힘이쑤욱빠져나간다.
‘뭐지?갑자기왜…?’
결국바닥에쓰러져버린나는눈꺼풀이무거워짐을느꼈다.
‘졸리다고?어째서?그럴기미는하나도없었는데??’
‘릴리스….릴리스가기다리고있을텐데….’
릴리스를떠올리며애써몸을일으키려했지만몸이말을듣지않았다.
시야가어두워지며눈을감기직전,나는품속에있는반지케이스를떠올렸다.
‘릴리스….’
—-
그뒤로정신을차린게지금이었다.
기억이정리된나는빠르게품속에손을넣어봤다.
딱딱한케이스잡혔다.
케이스를열어보자붉은보석의반지가정돈되어있었다.
“휴우….”
다행히반지는무사했다.
이어서주위를둘러보았다.
다시보니평범한곳이아닌것같았다.
차가운돌로이루어진딱딱한바닥과벽이한쪽면을제외한사방을둘러싸고있었다.
남은한쪽면은쇠창살로이루어진문이막고있었다.
나는지금있는곳이어떤장소인지깨달을수있었다.
‘감옥?!’
전형적인지하감옥의모습이었다.
‘내가감옥에?도대체어째서?’
쇠창살너머도옥실벽과마찬가지로검은벽돌로막혀있어도저히위치를특정할수없었다.
알아낼단서라고는없는참담한상황에나는품속에간직한케이스를움켜쥐었다.
바닥에서냉기가올라와몸이부르르떨리려던그때.
끼익
문이열리는소리와함께뚜벅뚜벅발걸음소리가들렸다.
점점가까워진소리가멈췄을때는쇠창살너머에서누군가가나를내려다보고있었다.
나는그사람이누구인지알고있었고그렇기때문에더욱경악할수밖에없었다.
“총장님?!”
대마법사라불리는아카데미의총장.
그런사람이창살너머에서나를내려다보고있었다.
흔치않게두눈이전부떠져있었으며색이다른두눈동자에는차가운기운이여려있었다.
“네가무슨짓을한건지알고는있나?”
“…네?”
총장님의말은듣기만해도거슬릴정도로날이서있었다.
“모르고했겠지.”
총장님은한숨을푹내쉬며말했다.
“하아….그래,무지는죄가아니지.하지만그정도가심하면크나큰민폐가된다.지금처럼말이지.”
“도대체무슨말씀이신지….”
그러자총장님은허공에서종이조각을하나소환했다.
종이조각한가운데에는대문짝만하게사진이박혀있었으며그사진은….
‘이런,설마….’
“내가무슨말을할지알겠지?”
한숨을푹내쉰총장님은.
쾅!
“네가지금무슨개짓거리를했는지알고있는거냐!!!”
쇠창살을내려치며고함을내질렀다.
모두에게존대를하며인자하거나장난스런모습만을보여주던평소와는전혀다른분위기였다.
“너와함께있는이‘존재’.이게어떤존재인지는알고있냐는말이다!!”
‘…이미다알아챈모양이네.’
저번과는다르게아예확신을한말투였다.
이미릴리스의정체를알아낸것이었다.
“외신이란말이다!그것도여태껏이세상에나타난외신과는격이다른무려‘아우터갓’이란말이다!”
“마을?도시?나라?자칫하면대륙을넘어서이행성자체가사라질수도있는상황을네가불러낸거다!!”
그렇게호통을칠때쯤총장님의옆으로누군가가다가왔다.
마찬가지로익숙한얼굴이었다.
“이봐,그렇게화낸다고해결될문제가아닌거,너도알고있지않냐.”
“하지만-”
“진정해.내가대화할테니까저기가서머리나식히고있으라고.”
“……시간이많이없어.”
“그래,알아.걱정말라구.”
총장님이철장에서멀어지고이어서수염난청년,히프노스가다가왔다.
그는장난스런표정이었던저번과는다르게딱딱하게굳은표정을하고있었다.
“미안해어린친구.저친구가아우터갓과엮이면상당히예민해지거든.심지어하필‘그’의딸인릴리스라니….제대로역린을건드린거지.”
‘그?릴리스의아버지라면….’
“들었겠지만,상황이심각해친구.네가알고불러낸건지는모르겠지만그존재는네상상을뛰어넘는존재라구.자칫하면우리모두순식간에먼지로사라질수도있어.우리뿐만아니라전세계의모두가말이야.”
히프노스는총장님과마찬가지로한숨을푹내쉬었다.
마른세수를한그는지친눈길로나를마주보았다.
“네가해줘야할게있어.네가소환한그녀….릴리스에게이걸붙이는거야.”
히프노스는쇠창살너머로무언가를건넸다.
어떠한표식이새겨진노랗게변색된낡은종이었다.
“우리들,그러니까….릴리스가속한아우터갓과대립을하는엘더갓들의표식이지.”
두사람을만난이래처음으로입을열었다.
“그걸붙이면어떻게되는데요.”
“릴리스의힘은약화될것이고우리들의리더가그녀를추적할거야.”
그들의리더라함은…
“노덴스말이죠?”
“역시알고있구나.그래.노덴스야.”
나는주먹쥔손에힘을꽉쥐었다.
이걸받아들고릴리스에게붙이라고?
한달반전에이런요구를했으면아마받지않았을까.
하지만지금은.
“이것만붙여주면우리가다알아서할-”
“싫어요.”
“….뭐?”
쫘악
히프노스가보는눈앞에서표식이새겨진종이를찢어버렸다.
그러자옆에서뚜벅거리는소리가들리더니.
“뭐라고?싫어?지금싫다고말한건가?”
총장님이서슬퍼런눈빛을드러내었다.
“지금상황파악이제대로안된건가?우리가설명을좀부족하게했어?”
그는말한마디한마디를끊어서말했다.
“세.계.멸.망.이라고.빠른조치가이뤄지지않으면세계가망한다니까!통째로!!”
“알고있어요.”
그파괴광선을난사할수있다고말한릴리스의발언에서도시하나쯤은가볍게날린다는말이거짓이아니라는것,나자신이잘알고있었다.
“하지만싫어요.”
“하!”
총장님은자신의눈가를한손으로덮더니허탈한웃음을내뱉었다.
히프노스가억누른듯한목소리로물었다.
“왜,싫다는거니.”
싫은이유,나에게는당연한것이었다.
“릴리스는세계멸망안시킬거니까요.”
“…그렇게확신하는이유는?”
“제가하지말라고했으니까요.”
그러자총장님이코웃음을치며말했다.
“말도안돼는소리!네가한말을아우터갓이따를거라고생각해?넌그존재의수많은남자친구,아니다.먹잇감에불과해.”
그럴지도몰랐다.
네크로노미콘에서묘사된릴리스는정말인간을먹잇감으로만바라보았으니까.
하지만나는릴리스를믿었다.
지금껏릴리스가내게보여준헌신.
그건틀림없는진실이었다.
“너의말은그존재에게아무런가치가없-”
“계약했는데요?”
“……뭐?”
“뭬야?!”
벙찐표정을짓는총장님과경악하는히프노스.
“계약을했다고?릴리스와네가?”
“네.”
내가고개를끄덕이자총장님이떨리는입을열었다.
“어,어디서거짓말을…릴리스는여태껏단한번도남성과계약을맺은적이없단말이다.네가계약을맺었을리가없어!”
‘아니,진실을말해도거짓말취급받은건좀서럽습니다만.’
총장님에게서고개를돌린나는히프노스에게물었다.
“저여기로데려온지얼마나됐죠?”
“가만보자….대략4시간?”
…맙소사.
때마침진동이울리기시작했다.
우우웅!
격렬한그진동은내교복칼라에서울리고있었다.
“그뱃지는뭐야?”
“릴리스가붙인신호기요.”
“뭣?!”
총장님의손에서빛이번쩍여뱃지로향했으나.
키잉!
거친파찰음과함께빛이튕겨져나갔다.
이윽고뱃지에서흘러나온검은기운이보호막을형성하여나를감쌌다.
“이보호막은기숙사를덮었던그…!”
“이렇게가까이봐서야알겠네.진짜릴리스의기운이야.”
“뭐야?그럼얘가정말로-”
총장님의말은더이상이어지지못했다.
그도그럴것이.
콰콰쾅!!!
묵직한폭발음이들리며사방의돌벽이진동했다.
돌가루가후두두비처럼떨어졌다.
“무슨일이야!”
총장님의외침에히프노스가침음했다.
“…이런.벌써와버렸네.”
폭발음은빠르게가까워졌고이내.
콰쾅!!
쇠창살맞은편에있던돌벽이폭발하며돌이사방으로튀쳐나갔다.
개중몇개가내게날아왔으나릴리스의보호막이전부막아내었다.
총장님과히프노스또한각자의보호막으로돌을막아내어서멀쩡한모습이었다.
모두의시선이터진벽으로집중되었다.
자욱한먼지사이로,붉은빛이두갈래비쳐나왔다.
먼지를헤치고나오는아름다운자태.
릴리스는격렬한폭발속에서도먼지나그을음하나묻지않고그모습을간직하고있었다.
“릴리스!”
나를보고잠깐안심한표정을지었던릴리스는고개를홱돌려총장님과히프노스를노려보았다.
맹렬한적의가담긴눈이시뻘것게빛났다.
“감히아서를…!”
우우웅
릴리스의전신에서검붉은기운이솟아오르더니.
“죽어.”
키이이이이이이이잉!!!
소름끼치는소리와함께지금껏내가보았던그어떤것보다두껍고강렬한광선이두납치범에게작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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