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Archive] I Became a Superhero in Kivotos

Chapter 33



1.

악몽과 같은 나날이었다.

게헨나의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는 지난 한 달을 그렇게 평가내렸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지옥과도 같은 나날. 하루하루가 정신을 잃을 것만 같던 지독한 시간이었다고, 그녀는 그리 평가내렸다.

생텀타워가 마비되고, 총학생회장을 실종되었다.

통제가 사라지며 엉망이 된 치안과 박살이 나버린 경제, 미처 두 손으로 막아낼 수 없는 사건들까지.

게헨나는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중앙 자치구와 총학생회가 기능을 상실하며 단숨에 망가져버린 키보토스. 그 중에서도 원래부터 무법지대로 유명했던 게헨나는 학원도시의 어느 지역보다도 가장 끔찍한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거리에는 온통 폭발과 총성만이 울려퍼지고,

학원 내에도 동아리 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더 나아가 게헨나 학생이 다른 자치구로 넘어가 소란을 일으키는 일마저 발생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모든걸 통제하고, 수습하며, 진압해야하는 위치에 놓인 히나는 생각했다.

‘도망치고 싶어. 그냥 집에 틀어박히고 싶어.’

미친 세상이다. 어째서 자신이 부임하고 있을 때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히나는 마음 속으로 한탄을 쏟아내면서도 끝내 자신의 의무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게헨나의 선도부장이자 풍기위원장.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나서서 사건을 진압하였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자신이 하지 않는다면 대신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피를 토하는 기분으로 버티고 버텼다. 힘겹고 고된 나날을 이겨내었다. 한 달이 지나간 지금에서 돌아보아도 어떻게 버텨냈는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악몽이나 다름 없는 순간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히나가 실크를 보게 된 것은 아마 필연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히나가 실크라는 존재에 주목하게 된 것은 그녀가 유명해지고 좀 지난 이후의 일이었다.

게헨나의 일을 처리하는 데에도 온 신경이 쏠려있던 히나였기에 D.U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찾아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허나, 오히려 그렇기에 히나의 머릿속에 실크라는 존재를 더욱 인상깊게 남아있게 되었을지 모른다.

[“네가 되고 싶은 존재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

[“그러니 차라리 머리가 복잡하다면, 무시해.”]

[“그런 고민 따위는 미래의 네가, 혹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해주겠지.”]

실크를 처음 보았을 순간을 기억한다.

새하얀 가면을 찬 채로, 적들을 쓰러뜨리는 모습.

시민 모두에게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손을 하늘 높이 뻗어올리는 모습.

그리고, 와카모에게 격려를 전하며 화면 너머의 모두를 위로했던 모습까지도.

자신이 모르는 장소에서, 닿을 수 없는 곳에서.

히나와 비슷하게, 아니 어쩌면 더 힘겹게 질서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실이 히나에게 알 수 없는 위안과 동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실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 날 이후, 히나의 최대관심사는 실크가 되었다.

호기심에 실크의 행적을 쫓고, 그녀가 남겼던 말들을 찾아보고, 그녀의 소식을 찾아들었다.

그렇기에 실크가 게헨나에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순간, 히나의 마음 속에는 흐릿한 희망이 부풀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히나 자신도 그것을 알았으나 구태여 겉으로 티내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해야할 바를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실크를 만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만을 품고 있었을 뿐.

다만 히나가 예상하지 못한 바가 있다면.

“안녕하세요, 선도부장님.”

실크는, 게헨나에 찾아온 순간부터 히나 그녀를 만나고자 했었다는 것.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히나는 눈앞에 나타난 실크를 바라보며 묘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히나가 느끼는 감정은 훗날, 모두가 인정하는 어른인 어느 존재에게 보내게 되는 감정이기도 한 것.

동경(憧憬). 그런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이었다.

2.

“당신이 왜 이곳에……?”

게헨나의 선도부장실.

다른 이름으로는 풍기위원장실.

실크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넨 장소는 게헨나에서도 가장 보안이 철저하고, 만마전의 의장조차도 쉬이 발을 들일 수 없는 그런 장소였다.

하지만 실크는 그런 보안따위는 손쉽다는 듯이, 마치 소문대로의 유령처럼 어느 순간부터 그곳에 있었다.

여유롭게 방 내부에 배치된 차를 들이키면서.

“그야 선도부장 님을 만나고 싶었으니까요. 아, 이거 맛있네요. 무슨 차에요, 이거?”

“…우롱차야. 그보다 날 만나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밖에서는 만나뵙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직접 찾아오지 않으면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으니까요.”

“이야기라…. 내가 지금 당장 밖에서 대기하는 선도부원들을 불러들일 수도 있는데도?”

히나의 떠보는 듯한 물음에도 실크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태평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그녀가 그러지 않을 것이란걸 알고 있다는 듯.

“저는 선도부장 님이 그러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요.”

“……나에 대해서 뭐를 안다고?”

“그냥 믿는거죠, 뭐. 제가 나름대로 감이 좋아서.”

“…하. 당신한테 믿는단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어.”

“진짜니까요. 전 히나 선배 믿어요.”

“……선배라. 재밌는 농담이네.”

아무리 경계의 기색을 내비쳐도 여전히 태평한 반응을 유지하는 실크의 모습.

그 모습에 히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뭔가 경계를 하는게 더 바보같아졌다.

결국 실크의 앞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히나는 이전보다 더 편안해진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하고싶은 이야기는 뭔데?”

“아, 잠시만요. 그 전에.”

“음?”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실크가 히나를 말렸다. 그리곤 잠시 기다리라는 듯 히나에게 한 손을 내밀더니, 이내.

달칵-

“……?!”

“선도부장 님께는 제 진심을 보이고 싶어서요.”

“아, 아니. 가면을 왜……?”

히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왜냐하면 실크가 갑자기 가면을 벗었으니까!

그 아래서 드러난 얼굴이 꽤나 수려하다는 것도,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인상이 사납다는 것도 그러했지만 가장 놀란 이유는 하나였다.

“진심이라니…….”

나에게 진심을 보이고 싶다?

아니, 그보다 걱정은 되지 않는건가?

“이곳에 감시카메라가 있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갑자기 그런 행동을…….”

“아, 그건 괜찮아요. 이미 해킹도 끝내놔서.”

“…….”

실크는 히나의 질문에 옆에 내려놓은 가면을 툭, 하고 건드리더니 그리 대답했다.

그에 히나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는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긴가? 대체 왜?

“너무 안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었다면요. 하지만 선도부장 님이니까요.”

“…….”

마치 자신을 믿는다는 듯한 말투. 도대체 내가 뭐라고 실크 당신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히나는 실크가 툭툭 내뱉는 말에 간질거리는 속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선도부의 아이들에게 매번 신뢰와 믿음을 받으면서도 어째서인지 그녀가 입에 담는 ‘믿음’이 그동안 받아왔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것이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예상치못한 만남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불씨가 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뭔가, 히나는 실크가 보내오는 믿음이 기분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두근거리는-

“흐흠!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뭐, 여러 가지 이야기죠. 감사 인사도 하고, 안부 인사도 전하고, 몇가지 정보도 전달하고요.”

“……그냥 놀러왔다는 이야기로 밖에 안들리는데?”

“음. 사실 맞아요. 전 선도부장 님이랑 친해지고 싶거든요. 제가 선도부장 님을 좋아해서.”

“…….”

그 말을 들은 히나는 눈을 질끈감으며 생각했다.

이 아이는, 존재만으로 정말로 해로운 소녀가 틀림없다고.

실크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심 때문일까, 그녀가 내뱉는 모든 말들을 하나같이 과대해석하여 바꿔 듣는 자신의 귀를 혼내주고 싶었다.

다만,

“…이야기 정도라면, 괜찮겠지.”

실크와의 인연이라면 자신도 환영이었기에.

히나는 실크가 건넨 손길을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3.

처음엔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실크가 자신과 친해지고 싶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참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처음 게헨나에 왔을 때 정말 놀랐다니까요. 무슨 시민들이랑 학생이 같이…….”

“…게헨나가 그런 부분이 조금 있지.”

처음 게헨나에 왔을 때 보았던 것부터,

“미식연구회의 하루나라는 애를 만났는데…….”

“동의해. 하루나는 우리 선도부도 매번 골치아픈 상대라 생각하니까.”

“정말로요. 제가 그때 꺼냈던 말들이 뭔지 아세요? 힘들게 설득하려고 했는데…….”

“멋진 말이네. 하루나가 왜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알거 같기도 한데?”

“……관심이라뇨, 무서운 소리 마세요.”

“후후, 농담이야.”

미식연구회의 하루나를 만났던 일,

“저번에는 어떤 골동품 가게에서 나쁜 놈들을…….”

“전해들었어. 덕분에 게헨나의 치안이…….”

그리고 실크가 게헨나에서 활동했던 일,

더 나아가, 게헨나에서 일어났던 일들 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겪었던 수많은 일들까지도.

그리고.

“당신은 왜 영웅 활동을 하는거야?”

실크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저에겐 꿈이 있거든요.”

“……꿈?”

“간단히 말하자면,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어요.”

그녀가 꿈꾸는, 몽상과 이상에 가까운 목표까지도.

다른 이가 꺼내들었다면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을 그런 아득하고도 불가능해보이는 목표였다.

실크의 입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도저히 실현될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목표라고, 저도 생각하긴 해요.”

실크는 웃었다. 두렵지 않다는 듯이.

“그럼, 어째서……?”

“그런 말이 있잖아요?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만 한다. 저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거든요.”

“…….”

“이 이야기는 히나에게 처음 꺼내는건데. 하하, 조금 부끄럽네요. 그래도 후회하진 않아요.”

실크는, 그녀의 파란 눈동자를 나와 맞추었다.

서로의 동공에 비추는 푸른색과 보랏빛이 공명이라도 하듯 일렁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진 심지가 보였다. 어떠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정신이 보였다.

신념이라고 불러도 좋고, 확신이라 불러도 좋을 것.

그 일렁임이 히나의 눈동자에 새겨졌을 순간, 히나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저 소녀가 빛나보였다.

어째서 자신이 동경하게 되었는지를 다시금 실감할 정도로.

“당신은, 대단하네. 나로서는 도저히 마음먹기도 힘든 일이 분명한데도. 그래도…….”

“멋있죠?”

“응…. 정말로 멋있어. 당신은.”

실크는 해맑게 웃었다.

때가 묻지않은 순수함과 정의가 그곳에 있었다.

그 정의로운 소녀를 바라보며 히나 또한 웃었다.

히나는 자신의 동경과 가까워지기란 어려우나, 그럼에도 그 진심을 이해할 수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도 도와줄게. 왠지 나도 당신이 좋아질거 같네.”

“그래요? 그럼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는거네요?”

“그렇게 되려나? 푸흣.”

소녀의 동경이 웃자, 소녀도 웃었다.

마음 속에 동경을 품은 소녀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분명 순수함을 품고 있었다.

그것으로 둘은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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