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6
1.
게임개발부 부실.
처음 방문해보는 장소는 아니었던 만큼 익숙한 발걸음으로 선생을 데리고 부실의 문을 여니, 평소보다 더 어질러진 부실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던진 게임기의 여파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실 안쪽의 모습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라고 해도 될 수준이었다.
혼란스런 현장의 한가운데에는 나와 선생이 찾아올 것을 직감하고 있었는지 귀여운 인상의 쌍둥이 소녀가 서로를 껴안은 채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혀를 찼다.
“청소 좀 하고 살자, 얘들아. 그리고… 모모이 나와.”
“으, 으응? 나, 나? 왜……?”
“너가 게임기 던졌잖아. 나와서 손 들고 반성해.”
“…….”
무어라 변명이라도 하려던 모모이였지만 내가 살벌하게 그녀를 바라보니 깨갱거리며 얌전히 옆으로 빠져나와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올리는 모모이.
울상 짓는 모모이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 나는 멀뚱멀뚱 이쪽을 바라보는 미도리에게 손짓했다.
“미도리 너도 손 들고 반성해.”
“엣?! 나, 나는 왜……!”
“연대책임이야. 너가 언니를 말렸어야지. 옆에서 뭐 했어. 이러다 선생님이 맞았으면 그대로 죽었어.”
“으윽……!”
“…나 그렇게까지 약골은 아닌데?”
“조용히하세요.”
“으, 응…….”
선생님의 나약함을 알고 있었는지 미도리는 심통한 표정을 짓곤 마찬가지로 모모이 옆에 나란히 앉아서 무릎 꿇고 손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 옆에서 선생님이 뭐라 불평을 중얼거렸지만 무시했다.
만약 모서리에 잘못 맞아서 죽어버리면 그 날로 키보토스는 멸망하는 거였으니.
그렇게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진다.
나는 쌍둥이의 머리를 콱 잡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아무래도 정신 교육을 좀 해야겠다.
꽈아악.
“악! 머리! 머리가……! 터져! 진짜로 터진다……!”
“끄아앙! 미안! 미안해! 반성할테니 제발……!”
“너희가 무심코 던진 돌맹이에 개구리는 맞아 죽어. 하마터면 너희는 생명을 하나 죽일 뻔했어.”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해요…! 다신 안그럴게요……!”
“개, 개구리? 아니, 내가 그 정도는 아닌데……?”
총알 한 방 맞고도 사경을 해매는 인간이 무슨.
키보토스에선 그 정도면 살아있는 시체 수준이야.
나는 선생님의 불평을 무시하고 쌍둥이에게 정신 교육을 이어갔다.
“너희가 하는 간단한 행동으로 선생님은 픽 하고 죽어버린다고. 선생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얼마나 나약한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지를 기억하라고!”
“저기, 히이로?”
“자 따라해! 선생은 약골 허접이다! 몸뚱이가 개구리 수준이다!”
“서, 선생은 약골 허접이다……!”
“선생은… 몸뚱이가 개구리 수준이다……!”
“저기요? 왜 내가 공격받는 느낌이지? 얘들아?”
“선생은 쓰레기다! 쓰레기 같은 몸을 가지고 있다!”
“쓰레기 선생! 돌 맞으면 죽는 선생!”
“…….”
그렇게 우리는 5분이라는 시간 동안 선생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의미 깊은 시간을 가졌다.
정신 교육이 끝났을 무렵, 어느새 선생은 유즈처럼 근처 캐비넷에 들어가 쭈구려 앉아있었다.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선생의 다리를 붙잡고 질질 끌고오며 본론을 꺼내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줬으면 하는건데?”
“어? 히이로도 도와줄거야……?”
“이제와서 빠지는 것도 어색하잖냐. 빨리 말해봐. 선생님도 그만 삐지시고 함께 하시죠.”
“내가 받은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시간 좀 줘…….”
“저희는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요?”
“팩트폭력이잖아!”
이걸 눈치채네. 역시 어른이라 그런지 눈치가 빨라.
“이건 어른이랑 상관없잖니…….”
2.
“실적 부족과 부원수 미달인가…….”
“흠. 어느 쪽이든 충족하면 해결된다는거네.”
쌍둥이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게임개발부가 처한 문제는 이러했다.
지극히 실적주의적인 밀레니엄의 특성상 모든 동아리는 나름의 실적을 필요로 했고, 이는 게임개발부에도 적용되는 법칙이었다.
물론, 실적이 없더라도 교칙에 명시되어있는 최소 인원수 이상의 부원을 모집한다면 일시적인 승인이 내려져 동아리가 유지되기는 하나, 문제는 게임개발부가 새로운 부원을 뽑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공계 학원인 밀레니엄에 입학할 정도의 학생이 레트로 게임에 관심을 가질 확률은 극히 희박한데다, 게임개발부에 속한 아이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기도 하니 더욱 어려운 상황.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아직까지도 캐비넷에 틀어박혀서 희박한 존재감을 내비치는 유즈가 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의 사정을 생각하면 새로운 부원을 뽑기란 어려운 일이리라. 그러니 방법은 하나 뿐이다.
“남은 선택지가 게임 개발 뿐이란건가.”
“맞아! 그래서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할 생각이었지!”
선택지의 폭이 하나로 좁혀진 이상, 그녀들이 해야할 일은 하나 뿐이었다.
게임개발부의 이름답게, 게임을 개발하는 것.
하지만…….
“……나는 게임 개발에 큰 도움은 주지 못할텐데?”
“나도 선생님과 마찬가지야. 게임 개발이라던가 해본 적이 없어서.”
문제는 선생은 물론이고, 나 또한 게임 개발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물론, 이들이 선생이 부른 이유가 그런 종류의 도움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했다.
그리고 또한.
부실 바깥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또한 마찬가지.
내가 개입해서 알릴 필요는 없는 것이리라.
똑똑-
“잠깐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문 밖에서 누군가가 질문을 건넸지만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곧바로 들어오는 상대방.
선생님은 물론이고 쌍둥이들은 경악에 찬 표정을 지으며 부실에 들어온 소녀를 바라보았다.
“나왔다! 학생회의 사천왕 중 하나! 냉혹한 계산의 회계! 유우카!”
“…사람과 담당 업무를 무슨 이명을 가진 몬스터처럼 부르지 말아 줄래? 실례야. 그리고… 역시 계셨네요, 선생님.”
“하하. 반가워, 유우카.”
“……하아. 뭐, 어쩔 수 없으- …히이로 너는 왜?”
“그렇게 됐습니다, 유우카 선배…….”
“그렇게되긴 뭘 그렇게 돼! 무슨 조직을 배신한 사람마냥 말하지 마!”
“음. 별거 아닙니다. 그냥 인연이 있는 애들이라 조금 도와줄려고 했을 뿐이에요.”
“……그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충 대답했다.
유우카도 미심쩍은 시선을 내게 보냈지만, 별다른 추궁을 하진 못했다. 애초에 할만한 이유도 없었고.
유우카도 그리 신경쓸 요소는 아니라 생각했는지 미심쩍은 표정을 짓긴 했으나 별 말 없이 넘어갔다.
직후, 유우카의 날카로운 시선이 향한 곳은 게임개발부 제일의 사고뭉치라 할 수 있는 모모이가 있는 곳이었다.
“모모이. 미안하지만 게임개발부의 폐부는 이미 결정사항이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아, 아직은 아니야! 저번에 분명히 말했잖아! 부원을 정족수에 맞추거나 밀레니엄 동아리로서의 성과를 낸다면 정상참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실적주의의 온상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
냉혹하고 차디찬 이 과학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한다.
사람 개인이든, 혹은 집단이 되었든 말이다.
그리고 현재, 밀레니엄 학생회는 게임개발부가 가치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학생회는 게임개발부에게 일종의 유예 기간을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너희는 부원수도 부족하고 부활동을 증명할만한 성과를 내지 않은지 1년이 넘었으니… 폐부되어도 이의는 없을텐데?”
“이의있소! 많이 있소! 우, 우리도 동아리 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
1년이라는 시간. 분명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게임개발부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학교 안쪽에 파칭코 파크를 건설해 대규모 도박장을 만들고, 고전게임기를 찾는다면서 고대역사연구회를 습격하고……. 이딴게 무슨 일반적인 여학원 동아리 활동보고서냐고! 웃기지 마!”
도박장 건설, 타 동아리 습격. 정황을 보니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사고를 친 모양.
확실히 이 정도면 학생회가 지금까지 게임개발부를 너그럽게 봐줬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모모이 너, 저런 짓까지 한거냐?”
“……때, 때로는 결과보다 의도를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모이야, 그게 무슨 소리니…….”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유우카가 천사로 보일 정돈데.
이걸 1년동안 봐준다고?
“……절차상 유예기간을 줬을 뿐이야. 마음 같아서는 바로 쫓아내고 싶었거든.”
아하. 봐준게 아니라 때를 기다렸던거군.
“너무해!”
“우, 우리도 게임 만들었었는데!”
“설마 〈올해의 쿠소게 상〉에서 1위 입상한 그 게임을 너희가 만든 실적이라고 말하는건 아니겠지?”
“…….”
“…….”
유우카의 날카로운 비수가 쌍둥이를 무너뜨렸다.
두 사람이 울상을 짓는걸 보곤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선생이 내게 속삭였다.
‘대체 무슨 게임이길래 저러는거니?’
‘그… 있습니다. 욕만 엄청 얻어먹은…….’
‘…아.’
선생은 대충 사정을 이해했다는 듯 쓰게 웃었다.
여전히 침몰해있는 두 사람에게 “1등이면 잘한거지!” 라며 의미없는 위로도 가끔 내뱉으면서.
이러한 촌극을 지켜보던 유우카는 미간을 문지르며 마지못해 말을 내뱉었다.
“후우. 밀레니엄에서는 오직 ‘결과’만이 증명될 뿐이야. 그러니 제대로 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증명하도록 해.”
“증명, 이라면……?”
“…유의미한 결과만 있다면 폐부는 철회해주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유우카가 말하는 ‘유의미한 결과’의 의미는 생각보다 더 어려운 과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대회 수상’이나 ‘공모전 입상’ 등을 생각하는 모습.
“열심히 해봐. 어차피 지금같은 수준이면 또 다시 ‘올해의 쿠소게 1위’이겠지만.”
“크윽……!”
“무리라고 생각하면 당장 동아리실을 비워줘.”
묘하게 도발하는 말투로 말을 잇는 유우카.
아무래도 일부러 저러는 모양이다.
선생도 비슷한 사실을 눈치챈 모양인지 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치잇…! 결과로 말해주겠어……!”
“결과로?”
“이미 그를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났으니까!”
“……뭐어?”
유우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모모이는 그에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으며 없는 가슴을 폈다.
“우리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어.”
“엣……?”
“미도리 너는 왜 놀라는거야. 아무튼! 바로 그걸로 우리는 이번 ‘밀레니엄 프라이스’에 우리의 게임, 〈TSC 2〉… 〈테일즈 사가 크로니클 2〉를 공모할 거야!”
“……?!”
“밀레니엄의 세 자릿수가 넘는 동아리들이 각자 결과물을 제출하는, 밀레니엄 최대 공모전! 여기서 수상하면 아무리 너라도 찍소리는 못하겠지!”
“…….”
모모이의 충격적인 선언에 황당한 것을 넘어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유우카.
하지만 이내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모모이, 네가 말하는건 야구부가 인터하이를 진출하는 레벨을 넘어서… 고교 야구부가 메이저리그에 나간다고 말만큼 허황된 말이야.”
“…….”
“풋. 그래도… 어째서일까. 오히려 기대가 되네.”
“……엥?”
“으, 으응?!”
“좋아. 기다려줄게.”
이게 되네.
모모이와 미도리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나와 선생님은 대충 유우카가 하는 진심이 다소 섞인 ‘연기’를 눈치채고는 있었기에 대충 놀라는 시늉만 하며 구경하고 있었을 뿐이다.
확실히, 원작 장면을 현실에서보니 재밌긴 하네.
솔직히 팝콘 마려울 정도?
“앞으로 밀레니엄 프라이스까지는 2주. 그 사이에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말야.”
이것으로 쌍둥이와 유우카의 대화는 마무리됐다.
결국 유예기간을 얻어냈으니 이제 게임개발부는 그 사이에 열심히 노력해서 게임을 만들어야겠지.
나랑 선생님은 그것을 돕고.
“선생님, 모처럼 뵈었는데 냉정한 모습만 보여 난처하네요. 다음번에는 좀 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뵙도록 하죠. 그리고… 히이로 너도. 다음에 또 보자.”
“네. 다음에 봐요.”
그것으로 유우카는 게임개발부 부실을 나섰다.
폭풍이 몰아친 것처럼 순식간에 엄청난 내용을 쏟아내고 사라져버린 유우카.
이제 남아있는 이들은 그 여파를 감당해야 했다.
나는 모모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래서, 모모이.”
“으, 응?”
“네가 말했던 ‘비장의 무기’가 뭔데?”
이미 상황은 벌어졌으니, 이제 해결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부턴 우리의 시간이었다.
“선생님, 히이로. 혹시… 「G.Bible」이라는 거, 알아?”
3.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
내가 밀레니엄으로 복귀하기 하루 전의 시점.
세이아와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를 상기한다.
“당신의 다음 행선지… ‘폐허’라고 했던가요.”
“응. 맞아. 그곳에서 찾아야할게 있거든.”
“그런가요. 그렇다면… 조언을 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들을게. 말해줘.”
직후, 세이아의 눈이 빛났다.
세이아의 은은한 금빛 눈동자, 담담하면서도 두려움이 선명히 담긴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운명을 읽는 힘이 담긴 시선은 닿는 것만으로 기묘한 압력이 느껴지는 듯했다.
“폐허. 그런 이름으로 불리우는 장소에 대해서 제가 아는건 많지 않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문장을 내뱉기 전, 세이아는 내 손을 붙잡으며 잠시 몸을 떨었다.
“그곳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불길한 무언가가 기상했고, 많은 적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폐허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무언가.
이 시기에 기상한 불길한 존재.
그리고 무수히 많은 적.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존재를,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이 시점에 깨어나고, 활동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확신.
예언자의 말이니 믿을만한 내용일 것이다.
그렇다면…….
“…폐허에서 확인해야할 것이 늘었네.”
폐허로 향하는 이번 여정에 나는 정말로 많은 것들을 알아가리라.
문득, 그런 직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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